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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삼수저를 찾는 모험
    misc. style 2025. 2. 3. 00:00

    한국에 영향을 준 디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랜 세월 한국 가정에서 익숙한 존재 중 하나인 인삼수저로 글을 시작해본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수저."로 알려진 인삼수저

    이 기원에 대해서 2015년 SBS에서 취재한 바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삼 수저'… 무늬에 담긴 의미

    과거 한반도에서 ‘인삼니즘’이 출현하면서 생긴 것이다.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인삼 무늬 수저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쓰일 정도로 한류열풍이다.

    news.sbs.co.kr

     

    보도에 따르면,

    • 세신실업이 1970년대 처음 제작했다.
    • ‘밥이 곧 보약’이라는 철학을 담아 디자인되었다.
    • 대나무, 인삼, 녹용 등 다양한 문양을 시도했지만, 인삼이 가장 인기가 많아 이후 나이프 등 다양한 식기에 적용되었다.
    • 20년이 지나면서 디자인 특허가 만료되었고, 다른 제조업체에서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이 디자인이 언제, 어디서, 왜 등장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삼이 한국 식문화에 자리 잡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단순한 제품 디자인을 넘어선 역사적·문화적 흐름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인삼문양 스테인레스 숟가락

    ‘인삼문양 스테인레스 숟가락’이 공식 명칭이겠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인삼수저’라고 부르겠다. 보통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이르는 말이지만, 이번 글에서는 숟가락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그렇다면, ‘인삼수저’란 무엇인가?

    인삼박물관. 인삼문양 스테인레스 숟가락. (e뮤지엄), 한국 - 광복이후

    인삼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인삼수저를 보면 특징이 명확하다.

    • 납작하고 평평한 손잡이
    • 각진 테두리 처리
    • 입체적으로 새겨진 인삼 문양

    형태는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으나, 제조사에 따라 세부적인 조형과 패턴이 조금씩 다르다. 지금은 다소 ‘구식’으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나도 어릴 적 비슷한 수저 세트를 집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이 인삼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인삼이라는 사실조차 인터넷에서 ‘인삼수저’가 한국 가정에서 널리 쓰였다는 이야기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봤던 것은 인삼이 아니라 사슴 문양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초의 인삼 수저 디자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삼수저의 시작을 알아보기 위해 KIPRIS를 검색해보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스테인리스 숟가락 손잡이에 장식을 추가한 디자인이 다수 등록되었다.
    그러나 SBS 뉴스에서 언급한 세신실업의 디자인을 찾으려 했으나, '인삼' 문양 자체를 명확히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1978년 세신실업이 출원한 상표가 ‘도라지’ 문양이었다.
    혹시 우리가 알고 있던 인삼 문양이 사실은 도라지였던 것 아닐까?

    4019780006495-세신 주식회사(1979.08.23)

    주요 특허 및 디자인 등록 소지자

    •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 (전라북도 군산)
      • 1967년 최초 디자인 등록.
      • 숟가락 손잡이에 장미 문양을 넣은 디자인.
        3019670000548-(1967.06.03)-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장미


    • 세신실업 (경상남도 양산)
      • 1968년 대나무 문양을 등록.
      • 1977년 화살촉 모양 상표 출원.
      • 1978년 도라지 문양을 포함한 상표 출원(뿌리 형태 포함).
        3019680000370-(1968.05.18)-세신 주식회사


    • 경동산업 주식회사 (인천광역시 서구)
      • 1979년 사슴과 인삼 문양을 등록.
        3019790001449-(1979.10.21)-경동산업 주식회사


    • 차보현 (경상남도 남해군)
      • 1979년 인삼(산삼) 문양 디자인 출원.
      • 디자인 출원 기록 125건 보유.
        4019840000192 (1984.01.07)-차보현
    • 한일스테인리스 (서울 서대문구)
      • 익숙한 심플한 사각형 손잡이 디자인
        3019870006818-(1988.12.12)-한일스텐


    스테인리스 숟가락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놋쇠에서 스테인리스로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놋쇠 수저가 널리 사용되었으나, 1960년대부터 스테인리스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유는 ‘연탄가스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연탄가스에서 나오는 유해 성분이 놋쇠를 변색시켜 관리가 어려웠다. 반면, 스테인리스는 연탄가스의 영향을 받지 않아 실용성이 높았다."
    — 형지인, 『일상의 새로움을 뜨는 숟가락』 (2021)

    당시 연탄 보급이 늘었다는 기록이 뒷받침하기는 하지만, 일산화탄소가 아니더라도 황동은 스테인리스에 비해 관리하기 어려운 소재였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스테인리스 생산 기술의 발전이었다고 생각된다.

    1940년 순산소 제강법의 제조기술의 개발로 스테인리스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1960년대 개발된 연속주조기술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 한국철강협회, 『스테인리스스틸 개발역사』

     

    형태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삼수저의 형태는 기존의 숟가락 디자인과 어떻게 연결될까?

    인삼수저는 넓적한 타원형 머리(술잎이라고 부른다. 마치 무당벌레의 몸체를 닮았다), 곧은 몸체(술자루라고 부른다), 납작하고 문양이 새겨진 손잡이(가장 끝은 술총이라고 부른다)가 특징이다.

    인삼수저의 형태적 특징

    • 납작하고 넓은 손잡이
    • 각진 테두리 처리
    • 머리(술잎) 부분이 둥글고 술자루와 명확하게 구분됨

    ① 조선 후기 숟가락과 비교

    • 조선 시대 숟가락은 머리(술잎) 부분이 작고, 손잡이(술자루)는 비교적 긴 형태를 가짐.
    • 장식 요소 없이 실용성 중심의 디자인.

    "조선 중기 이후 숟가락의 형태는 현재까지 약 60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 박인숙, 『은수저 개발에 관한 연구』 (1992)

    ② 대한제국 황실의 은제 숟가락과 비교

    국립중앙박물관. 은제 숟가락. (e뮤지엄), 한국 - 대한제국 (우측 숟가락 끝부분에 문양이 있다)

    • 대한제국 시기의 오얏꽃 문양이 들어간 황실 은수저와 형태적으로 유사.
    • 납작한 손잡이와 각진 테두리 형태를 보이며, 디자인적으로 인삼수저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

    결국 인삼수저의 형태는 조선 후기의 실용적인 숟가락과 대한제국 황실의 장식적 요소가 결합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손잡이에 문양을 새기는 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조선시대 숟가락에는 왜 손잡이 장식이 없었을까?

    과거에는 숟가락에 장식이 있는 경우도 발견되지만(청자음각운룡문숟가락) 조선시대 이후 한국의 숟가락은 기능성을 우선시한 단순한 형태를 유지해왔다. 조선 후기 이후 숟가락의 기본 디자인이 완성되었으며, 손잡이에는 별다른 장식이 추가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가 되면 숟가락은 실팍하고 도톰하여 봉은 넓어지고 둥글어졌으며 총은 곧고 꾸밈새의 군더더기들도 모조리 털려 나갔다. 조선 시대 숟가락의 힘차고 단순한 아름다움은 숟가락이 지니는 기능을 궁극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얻어진 아름다움이라 할 수가 있다.”
    — 예용해, 『민중의 유산』 (1997)

    대한제국 시기의 은제 숟가락을 더 보면 

    국립중앙박물관. 은제 숟가락. (e뮤지엄), 한국 - 대한제국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625때 들어온 미군 스텐숟가락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국립민속박물관. 군용 숟가락. (e뮤지엄), 한국 - 광복이후

    왜 인삼인가?

    대나무, 녹용도 있었는데 왜 인삼이 선택되었을까?

    세신실업은 1970년대 초 대나무, 녹용, 인삼 등 여러 문양을 시도했지만, 인삼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우리 선조들은 오복(五福)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그 바람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문자를 문양으로 도안하 여 생활 주변의 기물에 구체화했다.
    — 옥순종, 『한국인 생활 속 인삼 문화의 상징성』 (2024)

    하지만 전통적인 문양을 보면, 인삼이 주요 장식 요소로 사용된 사례는 드물다.

    그렇다면 1970년대에 인삼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이유는 무엇일까?

    인삼이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이었기 때문

    • 인삼은 한국에서 고대부터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인삼 재배를 촉진하는 국가 정책이 추진되었다.

    ② 해외에서 한국산 인삼이 인정받던 시기

    • 1960년대부터 해외 신문에서는 한국 인삼을 ‘만병통치약’이라 평가했다.
    • 1970년대 들어 한국 정부는 인삼을 수출 전략 품목으로 적극 홍보했다.

    요즘「런던」서보내온 通信(통신)을 보면、『韓國產人蔘(한국산인삼)은病者(병자)를위한 萬病通治藥(만병통치약)이며 몸이 쇠약한사람들에겐 좋은 平靜劑(평정제)가된다』고 評判(평판)이 매우높다한다。
    — 동아일보 (1962.06.28)

    결국, 1970년대의 경제·정책적 흐름 속에서 ‘인삼 문양’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국가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인삼수저의 디자인적 기원 정리

    인삼수저가 등장한 배경을 종합해 보면,

    • 형태적 기원: 대한제국 황실의 은수저와 유사한 디자인.
    • 소재적 기원: 1960년대 이후 스테인리스 생산성이 향상되며 소재 변화.
    • 상징적 기원: 1970년대 인삼이 국가적인 대표 상품으로 부각됨.

    결국, 인삼수저는 역사적·사회적 변화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지금, 인삼수저는 어디에 있을까?

    한때 한국인의 밥상 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인삼수저. 하지만 지금은?
    최근 소비 트렌드를 보면, 인삼수저 같은 장식적인 디자인보다는 미니멀한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늘의집 기준 인기순으로 보면, 상위 10개 중 9개가 투톤 컬러 디자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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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hou.se

     

    이들 디자인은 큐티폴(Cutipol) 스타일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아 라이트그레이골드 디저트 스푼 - Cutipol

     

    cutipol.kr

     

    인삼수저의 장식은 걷어내진 것으로 보이지만 스테인리스 재질와 술잎의 형태, 곧은 술자루는 남겨두고 갔다.

    언제부턴가 한식 식기는 커틀러리의 한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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